오늘은 말 없이 지키는 십일 초
어제 두 사람이 남긴 것은 정답이 아니었다. 확인한 것 한 줄. 아직 모르는 것 한 줄. 하늘은 오늘은 입을 다물기로 했고, 민제는 배를 한 발짝만 돌려 보기로 했다.
창 밖은 어제와 같은 별밭이었다.
정하늘이 먼저 손을 들었다. 말하지 말자는 약속이었다. 강민제는 고개만 끄덕이고, 손으로 돌리는 시계를 무릎에 올렸다. 발 고정대 버클이 작게 울렸다. 둘은 발차기 직전처럼 중심만 낮췄다. 손표적은 고리에 묶여 있었다. 오늘은 발로 차지 않기로 했으니까.
시계가 십일 초에 닿았다.
하늘의 왼쪽 안경에 파란 불이 들어왔다. 물병은 난간에 묶여 있었다. 빛은 병 위를 지나가지 않았다. 불은 안경 안에서만 깜빡이고 꺼졌다.
하늘이 숨을 삼켰다. 입 모양만 “별”이었다.
민제가 그 입을 보더니, 빈칸에 이름 없는 점을 하나 찍었다.
하늘이 참지 못했다.
“한 마디만.”
“한 마디가 이름이 돼.”
“그럼 한 음절.”
“꺼.”
하늘이 웃다가 손으로 자기 입을 막았다. 파란 불은 이미 없었다. 훈련 구역에는 환기 장치의 낮은 울림만 남았다.
민제가 시계를 닫으며 짧게 말했다.
“오늘은 온다. 자리 얘기는 밥 먹고.”
하늘이 손가락으로 창 아래를 가리키다 말았다. 배 바깥으로 막대 하나가 길게 나가 있는 자리가, 창 구석에 살짝 걸려 있었다. 둘 다 그걸 신호라고 쓰지 않았다. 막대일 뿐이었다.

컵을 돌리면 안과 바깥이 갈린다
회전링 식당. 데운 국물이 또 김을 올리고 있었다.
민제가 자석 컵을 트레이 위에서 밀어 돌렸다. 국물이 컵을 따라 한 바퀴 돌았다.
“이게 어제 못 한 회전이야.”
하늘이 컵 테두리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국물이 따라오면?”
“컵 안이지.”
“창밖에 남으면?”
“바깥이지.”
하늘이 눈을 빛냈다.
“화면도 컵이네. 파란 쪽이 배를 따라오면 우리 쪽이고, 하늘에 남으면 바깥이고.”
민제가 컵을 멈췄다. 국물이 출렁이다 가라앉았다.
“한 발짝만. 발차기 하나만큼.”
“그 이상은?”
“도장 안 찍혀.”
하늘이 국물을 들이켰다가 뜨거워서 혀를 내밀었다.
“우주는 처음이라 국물도 처음이야.”
“그건 네 입이 성급한 거야.”
창가에 노란 경보등은 잠잠했다. 어제 식탁을 비우고 달려갔던 자리가, 오늘은 그냥 식탁이었다. 하늘이 그 자리를 슬쩍 보고는, 수저를 자석 홈에 붙였다.
“좋아. 한 발짝. 내가 손잡이.”
“내가 시계. 빈 부하도 그대로.”
민제가 손바닥만 한 검은 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빈 부하는 바깥 신호를 안 받는 기준 입력이었다. 둘은 그걸 귀마개라고 불렀다.
“귀마개 이름, 아직도 그거야?”
“그거라서 기억나.”

배에 붙은 파란 쪽
지휘소.
민제가 빈 부하를 수신기에 다시 물렸다. 주 수신, 보조 수신, 빈 부하. 어제와 같은 세 칸이 나란히 켜졌다. 주 수신과 보조 수신은 같은 하늘을 서로 다른 길로 확인하는 두 개의 귀였다.
하늘이 자세 손잡이를 잡았다. 손가락이 먼저 움찔하자, 그는 손보다 어깨를 내렸다.
“발보다 중심.”
“배는 발이 아니야.”
“있으면 덜 흔들려.”
배가 아주 작게 기울었다. 창의 별이 한 발가락만큼 미끄러졌다. 발바닥으로 낮은 진동이 올라왔다.
둘은 손을 뗐다. 건드리지 않는 것도 오늘 약속이었다.
시계가 십일 초에 닿았다.
두 귀에 푸른 봉우리가 솟았다. 빈 부하는 낮았다.
화면의 파란 부채꼴은 별을 따라가지 않았다. 배가 기울어도, 그 부채꼴은 배의 같은 자리에 붙어 있었다. 엉덩이 쪽.
하늘이 속삭였다.
“우리 배야.”
민제가 빈칸을 열었다가, 그대로 덮었다.
“배에 붙었어. 배가 만들었는지는 몰라.”
하늘이 화면 위에 손가락으로 글자를 그렸다. 외. 계. 그리고 지웠다. 지워진 자리만 잠깐 반짝였다.
“한 발짝 더.”
“안 돼.”
“별이 더 미끄러지면 확실하잖아.”
“확실해지는 건 네 마음이야. 기록은 아직 한 발짝분이야.”
하늘이 손잡이에서 한 뼘 물러났다. 민망한 웃음이, 어제 운동장 앞차기 때와 비슷했다.
“알겠어. 창으로 엉덩이나 보자.”

창을 잘못 고르고 카메라를 보낸다
둘은 뒤쪽이라고 생각한 해치를 열었다. 별만 가득했다. 안테나도, 꼬리도, 불도 없었다.
하늘이 창틀에 이마를 붙였다.
“여긴 옆구리야.”
“처음이라 서툴러.”
“변명은 기록에 못 써.”
한 구역을 더 지나자 좁은 창이 나왔다. 배 바깥으로 막대 하나가 길게 나가 있었다. 아침에 창 구석에 걸렸던 그 막대였다.
하늘이 코를 유리에 붙였다.
“저거.”
“아직 저거야.”
둘은 발로 바닥을 짚고, 십일 초를 세었다. 막대 끝은 검었다. 별빛만 막대 옆구리를 스쳤다.
하늘이 유리에 입김을 묻혔다가 소매로 닦았다.
“안 켜졌어.”
“우리가 보는 각도가 아닐 수도 있어.”
“아니면 불이 콩알만 하거나.”
민제는 이미 검사 카메라 손잡이를 당기고 있었다.
“눈 대신 길게 보자. 창은 거짓말할 때가 있어.”
“창이 거짓말해?”
“각도가 거짓말하지. 창은 그냥 창이고.”

카메라는 거미처럼 막대를 따라 기어갔다. 화면이 흔들렸다.
하늘이 무심코 앞차기 자세를 잡고 중심을 낮추자, 손끝이 덜 떨렸다. 민제가 그 발을 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다.
막대 끝에 작은 테두리가 보였다. 램프의 테두리인지, 그냥 흠집인지는 아직 몰랐다.
시계가 십일 초에 닿았다.
파란 불이 한 점 켜졌다가 꺼졌다.
하늘이 소리를 지를 뻔하고, 민제의 소매를 잡았다. 민제는 다른 손으로 녹화를 잠갔다. 손대지 않은 화면, 그대로.
둘은 그 한 점을 두 번 더 보았다. 켜짐. 꺼짐. 십일 초. 켜짐. 꺼짐.
“끝에 있어.”
“끝에 불이 있어. 그 불이 박자인지는 몰라.”
하늘이 투덜댔다.
“어제보다 가까워졌잖아.”
“가까워진 건 자리야. 정답은 아직 멀어.”
카메라가 바람 없는 바깥에서 가만히 멈췄다. 막대는 배의 엉덩이에서 곧게 나가 있었다. 아주 가늘고, 아주 길었다.
하늘이 중얼거렸다.
“이름 붙이면 안 되는 거, 알지.”
“알지.”
“그래도 엉덩이는 되겠지.”
“엉덩이는 방향이야. 원인 아니야.”

전구는 꺼지고 박자는 남는다
민제가 외부 표시등 칸을 찾았다. 이름 없는 램프 하나가 꼬리 끝에 묶여 있었다.
“끄자.”
하늘이 눈을 크게 떴다.
“증거가 사라지잖아.”
“램프만 꺼. 귀는 열어 둬.”
하늘이 셋을 세고 손가락을 떼었다. 카메라 속 끝이 어두워졌다. 테두리만 남았다.
둘은 또 기다렸다.
십일 초.
두 귀에 푸른 봉우리가 솟았다. 빈 부하는 낮았다. 카메라 속 막대 끝은 까맸다.
하늘이 의자 팔걸이를 쳤다가, 민망해서 쓸었다.
“눈에 보인 불은 전구였네.”
“전구는 꺼졌어. 박자는 남았어.”
같은 자리. 다른 물건.
어제 같은 발차기가 바닥에서 다른 결과를 냈던 일을, 오늘은 굳이 말로 옮기지 않았다. 하늘이 슬리브 끝을 민제 쪽으로 던졌다. 민제가 받아 콘솔 모서리에 걸었다.
“그럼 전구 뒤에 뭐가 있어.”
“내일 꺼낼 문장이야.”
“오늘 한 줄만 더.”
“오늘 줄은 두 개야. 세 번째는 짐작이야.”
하늘이 혀를 찼지만, 화면의 빈칸은 건드리지 않았다.

두 줄과, 주인 없는 한 줄
민제는 성공한 문장보다 실패한 쪽을 먼저 묶었다. 창을 잘못 고른 것. 눈으로 놓친 십일 초. 램프를 끄기 전에 만지려다 참은 손.
하늘은 그 옆에 짧은 두 줄을 적었다.
배에 붙은 방향은 꼬리 쪽이었다. 카메라가 꼬리 끝 램프의 십일 초 깜빡임을 보았다.
눈에 보인 램프와 귀에 잡힌 박자는 같이 꺼지지 않았다. 누가 박자를 만드는지, 램프가 그 박자를 따라 켜진 것인지는 비워 두었다.
민제가 첫 줄 옆에 연필 표시만 했다. 도장은 찍지 않았다. 하늘이 둘째 줄에서 “외계”를 한 번 더 지웠다.
“숫자는 또 나왔어.”
“배 엉덩이 주소가 나온 거지.”
“주소만 있으면 찾아가지.”
“찾아가서 문을 열지는 아직 몰라.”
늦은 국물은 이번에도 식어 있었다. 민제가 한 입을 반으로 나눴다. 주먹을 가볍게 맞대자, 주먹은 또 짧게 떨어졌다.
“다음엔?”
“말 없이 전구 뒤를 보자.”
하늘이 해치를 열며 덧붙였다.
“그리고 창은 내가 안 고를게.”
둘의 시선이 카메라 대기 화면에 남았다. 꼬리 막대는 꺼져 있었다. 창 안쪽에서는 아무 불도 켜지지 않았다.
그들이 트레이를 자석 수거함에 넣는 동안, 기록에 올리지 않은 대기열 한구석에 주인 없는 줄이 하나 들어왔다.
다시.
십일 초 뒤, 같은 줄이 한 번 더 들어왔다.
그 줄은 아직 어느 두 줄에도 붙어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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